기사 메일전송
close button
산재소송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는 어떻게 판단되는가? - - 산업재해 소송에서의 인과관계 판단의 법리와 현실
  • 기사등록 2026-02-12 15:09:36
기사수정


정채원 변호사 (법무법인 사람앤스마트)

산업재해에서 ‘사고’는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질병’은 다르다. 뇌출혈, 심근경색 등의 뇌혈관질환 및 COPD, 진폐등의 직업성 폐질환과 같은 질병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며, 그중 업무의 기여도가 어느정도인지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산업재해 분쟁의 핵심에는 늘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가 놓여 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산업재해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업무와 질병 또는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필요하다고 판시해 왔다. 다만 그 인과관계는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하게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본다(대법원 2017. 11.14. 선고 2016두1066

판결, 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8두32125 판결 등). 이는 산재보상법 자체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 함에 그 입법 목적이 있는 만큼 법 자체가 가지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반영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과관계 판단의 기준이 사회 평균인이 아니라 ‘해당 근로자의 건강 상태와 신체 조건’이라는 점이다. 이는 실무에서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기존 질환이 있는 근로자라 하더라도, 업무상 과로나 유해요인이 겹쳐 질병을 유발하거나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18. 5. 15. 선고 2018두32125 판결).


실제 소송에서 이러한 법리가 문제된 사례가 있었다. 해당 사건의 망인은 중증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환자로, 폐 기능이 일초량(FEV1) 43%로 극도로 저하된 상태(보통 일초율이 30%이상 55%미만인 경우 장해등급 제3급의 중증의 COPD에 해당한다.)였다. 원심은 망인의 뇌경색으로 인한 연하장애가 흡인성 폐렴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르렀다고 보았으나, 이는 망인이 석탄광업소에서 장기간의 분진작업에 종사함으로 인해 중증 COPD를 앓고 있다는 핵심적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었다.


건강한 폐를 가진 사람이라면 일시적 흡인으로 인한 폐렴이 발생하더라도 폐의 정상적인 방어기전 내지는 항생제 치료 등으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위 사안과 같이 이미 폐 기능이 현저히 저하된 근로자에게는 소량의 흡인조차 치명적인 폐렴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회복조차 어려워진다. 실제 이 사건 감정의 역시 기저 폐질환이 폐렴의 위험요인이 되었고, 폐렴이 동반되면서 패혈증과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유사한 사안에서 법원은 진폐증 및 그 합병증인 COPD를 앓아온 근로자가 폐렴 등으로 사망한 경우, 다른 기저질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더라도 업무상 폐질환과 사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21. 6. 30. 선고 2020누41001 판결). 또한 진폐 환자의 경우 폐렴 발생 위험이 일반인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하여, 업무상 질병이 사망의 한 원인이 되었거나 기존 질환을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악화시켰다면 인과관계를 인정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16. 8. 25. 선고 2015구합82822 판결).


결국 상당 인과관계 판단은 “업무상 질병의 직접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당해 근로자의 신체 조건에서, 업무상 질병이 사망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였는가”를 묻는 것이다. 법원은 평균인의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장기간의 근무로 인하여 누적된 유해 요인 노출, 그로 인하여 이미 약해진 신체 상태 등 구체적 조건을 전제로 판단한다.


산업재해 제도는 노동 현장에서의 위험 요소들에 취약한 근로자에 대한 보호를 사회가 분담하기 위한 장치다. 결국 산업재해 인과관계 소송은 자연 과학의 문제처럼 단 하나의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업무가 질병의 발생 또는 악화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였는가’를 입증하는 과정에 가깝다. 법원은 단편적인 진단 명이나 전문적인 의학적 소견 뿐만이 아니라, 근로자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강도의 노동을 지속해 왔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 후 근로자 개개인의 근무 내용과 건강 상태, 신체 조건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규범적 판단을 내린다. 그 판단은 결국 한 노동자의 삶과 생계가 걸린 법적 판단이므로, 평균에 입각한 것이 아닌 ‘그 사람’의 몸과 노동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변호사로서는 그 사람이 겪은 시간과 환경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소송의 향방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1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6-02-12 15:09:36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
하루 동안 이 창을 다시 열지 않음